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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가 내린 후의 하늘처럼, 영화관을 나서며 마음이 깨끗해지는 듯 한 영화를 봤습니다. 빠르고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잠시 따뜻해지는 그런 아날로그적인 감성의 영화입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감독 조진모

출연 강하늘 천우희 강소라

개봉 2021년 4월 28일

전체관람가

117분

 

누군가를-기다리는-강하늘
누군가를 기다리는 영호

 

매년 12월 31일이면 영호(강하늘)는 옛 초등학교 자리 공원에서 기다립니다. 이날 비가 오기를, 그리고 비와 함께 누군가가 오기를.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길고 긴 기다림이었습니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청춘처럼 말입니다.

 

때는 8년 전,

 

똑똑한 형과 달리 꿈도 희망도 없던 영호는 삼수를 시작합니다. 입시 학원 선생님은 삼수생들을 퇴적암이라 비유하며 공부에 뜻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하라고 조언을 하지요.

 

현실이 답답한 영호는 초등학교 시절의 한 여자아이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 여자아이와의 만남은 운동회 날이었습니다.  영호는 힘을 다해 달리기를 했지만 그만 넘어서 팔을 다쳤습니다.

 

이미 친구들은 들어왔고 자신만 늦게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던 그때, 골인 지점에 서 있던 한 여학생이 영호의 손등에 '참 잘했어요' 완주 도장을 찍어주었습니다. 또한 수돗가에서  청군이었던 자신을 위해 백군 모자를 벗고 같은 청군으로 바꾸면서 손수건을 내밀어 줬습니다. 

 

같은 반인 적도 없고 곧 전학도 가버렸지만, 이날 체육복에 선명하게 적혀 있던 '공소연'이라는 이름만 남겼던 여자아이에게 경호는 왜 갑자기 생각나 편지를 보내고 싶었을까요?

 

어쩌면 그때 넘어져도 자신을 기다려줬던 것처럼, 손수건을 내밀어 줬던 것처럼, 답답한 자신의 청춘에 응원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우체통-앞에-선-영호
설레며 편지를 보내는 영호

 

그렇게 주고받기가 시작된 편지는 서서히 영호의 일상을 기다림과 설렘으로 물들입니다. 

 

 

편지와-선물-보여주는-소희-천우희
언니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여주는 소희

 

그러나 편지의 주인공 공소연은 병이 악화되면서 손가락만 겨우 움직일 정도로 아픕니다. 그런 언니를 대신해서 동생 소희가 영호의 편지를 읽어주며 대신 답장도 보냅니다.

 

"몇 가지 규칙만 지켜줬으면 좋겠어. 질문하지 않기. 만나자고 하기 없기. 찾아오지 않기"라는 조건으로 시작된 편지는 그녀에게도 역시 편지는 설렘입니다.

 

마지막 편지를 쓰며 고민하는 소희

 

하지만 언니의 건강이 점점 나빠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에 소희는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12월 31일 비가 오면 그때 우리 만나자'

 

그 뒤로도 계속 도착한 영호의 편지는 뜯지 않은 채 언니의 유골함에 넣어두면서 이들의 인연은 끊어지는 듯 보입니다.

 

나만의 우산을 만드는 영호

 

그 뒤 영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갑니다. 가죽 공방을 하는 아버지 옆에서 함께 만들기를 좋아하던 영호였습니다. 소연과의 약속을 잊지 않던 영호는 비를 기다리며 우산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아지에게 맞춤 우산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하는 위로였습니다.

 

 

상처 많지만, 반짝이는 별을 닮은 수진

 

 

같은 학원의 삼수생 수진(강소라)은 자유로운 소년처럼 보이지만 상처 또한 많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웃고 있어도 울고 있는 듯한' 영호의 표정에서 자살한 오빠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여러 번 영호에게 다가가 마음을 보이지만 거절당합니다.

 

그런 영호에게 수진은 묻습니다.

"나와 그 친구(소연)의 차이점이 뭐니"

"너는 별 같아. 보고만 있어도 눈이 부셔. 그 친구는 비 같아. 나한테 위안을 줘"

 

이 넓은 우주에서 너와 내가 만나 한 건물에 있는 확률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수진은 그 말처럼 반짝이는 별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소망했던 오로라 밑에 혼자 우뚝 서게 되는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 표지

 

그저 거창한 꿈이나 성공이 아니라 오늘 살아갈 위안과 버팀목이 영호는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가능성이 낮아도 그 희망에 기대어 비를 기다리고 소연을 기다렸습니다. 과연 12월 31일에 비가 올까요?

 

영화는 만날 지 만나지 못할지, 여백을 남기고 끝납니다. 마침표를 찍는 대신 관객들에게 채워 넣기를 바라기 때문이겠지요?  그 때문에  끝나지 않은 뒷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순간이 행복했습니다. 

 

 

이처럼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오랜만에 마음과 세상도 깨끗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러니 따스한 5월에 꼭 보셨으면 하는 영화로 추천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다고 방심하지 마시고 쿠킹 영상을 꼭 보셔야 합니다. 미리 아시면 안 되는 결말. '아, 그렇구나'라고 감탄하며, 이해되지 않았던 몇 개의 대사가 맞아 들어가게 됩니다. 참 잘 쓴 각본이고 잘 만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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