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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끝날 것 같던 코로나 19가 아직도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누적 확진자가 10만 명이 넘어섰지요. 백신 접종자 또한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순조로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답고 나뭇가지의 새순은 설레게 합니다. 오랜만에 등교한 학생들은 친구들과 재잘거리고, 거리마다 가게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서로의 몸이 닿을 까 떨어져 지내기만 하던 세상! 이제 백신과, 봄의 따스함으로 인해 이 가혹한 코로나 19의 끝이 보이는 희망이 커졌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4차 유행'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코로나 19도 끝이 나서 마스크를 벗는 세상이 오겠지만 마냥 낙관할 수도 비관할 수도 없는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위한 연구 중 하나입니다.

 


이 연구에서는 행군의 어려움에 대한 병사들의 희망과 두려움을 다루었다. 그 목표는, 심리 상태가 신체적 수행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낙관주의 vs 비관주의

 

 

모든 병사들이 이전에 40킬로미터 행군을 성공적으로 마친 경험을 가지고 있고 좋은 상태였으며 엘리트 전투부대에 들어오겠다고 자원한 의욕이 높은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군에 관해 들은 정보에 따라 수행능력은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각 그룹에는 40명으로 전체 병사는 160명이었다.

 

* 한 조의 병사들은 얼마나 멀리 행군할지 듣지 못했다

* 한 조의 병사들은 40킬로미터를 행군할 거라는 예기를 정확하게 들었다

* 한 조의 병사들은 실제보다 25퍼센트 짧은 거리인 30킬로미터를 행군할 것이라고 들었다

* 한 조의 병사들은 실제보다 50퍼센트 먼 거리인 60킬로미터를 행군할 거라고 들었다

 

<정보가 영향을 미치는 원리>

 

1위는 자신들이 40킬로미터를 행군한다는 예기를 정확하게 들은 병사였다.

정보를 정확하게 들은 병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성취와 그 정보를 비교할 수 있어서 자신들이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의심하지 않았다.

 

2위는 30킬로미터만 행군할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가진 그룹이었다

30킬로미터만 행군할 거라고 생각한 병사들은 사실을 알게 되자 불쾌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행군의 4분의을 완수했고, 비슷한 조건에서 이전에 전체 거리를 완전히 행군한 적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나쁜 소식 때문에 짓밟힌 기분이 들어 행군을 마칠 수 없었다.

 

3위는 행군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지 못하는 그룹에게 주어졌다

나중 두 그룹은 스스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종착지에 가까워올수록 낙오했다. 오랫동안 걸었지만 남은 거리를 확실히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다. ‘다음 산등성이 바로 너머’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또 다른 산등성이일 뿐이라는 것이 거듭되면서 낙담하고 힘이 빠졌다.

 

4위는 60킬로미터를 행군해야 한다고 비관적으로 생각한 병사들이었다.

출발부터 행군을 마칠 수 있을지 걱정에 휩싸였고 그래서 다른 병사보다 훨씬 먼저 낙오하기 시작했다. 무려 3분의1이 10킬로미터 이후 낙오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날마다 아침식사 전에 뛰는 거리였다. 군장 무게 이외에도 그들의 머릿속에는 ‘60킬로미터’라는 무게 또한 나르고 있었다.

 

마지막 두 그룹에게는 쉬는 동안 정확한 소식을 전해졌다. 자신들이 11킬로미터를 더 가야 하는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은 눈에 띄게 낙담을 했고 일부는 상대적으로 짧은 구간에서 낙오했다.

 

반대로 남은 구간이 30킬로미터가 아니라 11킬로미터만 가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병사들은 활기를 띠고 신이 났다. 그들은 자축의 하이파이브를 나눴고 이 지점까지 온 병사는 모두 행군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미 그들은 이전에 40킬로미터를 행군했기 때문에 모두가 목표를 성취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뇌에 입력된 정보에 따라 그 능력에 미치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잘 해내기도 했습니다.

 

즉 우리의 뇌가 결과를 믿지 못한다면 신체의 힘을 쓸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능한 모든 능력을 쓰고도 실패하는 것을, 우리 인간은 두려워합니다. 그러니 해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해내는 데 필요한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코로나 19가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비관은, 걷기도 전에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제 곧 끝날 거야'라는 낙관도, 그 희망이 달성되지 않으면 좌절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코로나 19 시대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어디쯤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