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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콘트라베이스

저자 : 파트리크 쥐스킨트
출판 : 열린책들발매 : 2000.02.29
분야 : 독일소설

 

 

누군가 내 인생에 기억이 남는 책을 물어본다면 빠질 수 없는 이 책은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는 <향수>. 향수라는 평범한 물건 하나에서 그토록 기묘한 이야기라니!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은둔 생활을 하는 저자는 34세 되던 해 남성 모노드라마인 이 희곡 작품을 통해서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소개
파트리크 쥐스킨트 저자

 

무대에 등장하는 남자는 자신이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지만 그 안에서 인정받지 못함을 토로하고, 자신의 처지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하는 아픔을 이야기한다. 또한 더 이상 연주를 하고 싶지 않아도 안정적인 신분에서 벗어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시민으로서의 두려움도 보여준다.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를 포함한 많은 악기들이 모여 전체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제 역할을 해야만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박수를 받지 못한다. 주인공은 콘트라베이스야말로 오케스트라에서 빠질 수 없는 제일 중요한 악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악기에 휩싸여 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속상하다.

 

게다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세라를 남몰래 사랑하지만 쥐꼬리만큼 받는 월급으로는 세라 앞에 나설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조차도 모르는 세라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받고 싶어 애를 태운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많은 돈을 받는 성악가들이 세라를 데리고 비싼 음식점에 데리고 가는 것을 지켜만 볼 뿐이다.

 

 

콘트라베이스 책 소개
콘트라베이스 책 표지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하기 싫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안정된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이다. 월급은 제날짜에 나오고 나중에 연금은 나오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다. 독주를 할 수 없는 악기를 가지고 안정된 곳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다. 오히려 두렵다.

 

그래서 공연 중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러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고 주인공은 오늘도 공연을 하러 간다.

 

그런 까닭에 저는 오케스트라의 구성을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세계에서나 그 세계에서 쓰레기와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정을 받기 마련이지요. 더구나 오케스트라의 세계는 인간 세계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에서는 이론적으로 보자면- 언젠가는 나도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내 밑의 벌레 같은 것들을 내려다볼 날이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지만... (63p)

 

그 자리에 있기까지 열심히 했고 실력도 있고 중요한 자리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애환을 듣다 보면 결국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크고 불편하고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하지만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삶. 주인공은 왜 계속 이 짓을 계속 하는 이유로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고 있냐고 반문한다.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며.

 

 

콘트라베이스 연주 장면
콘트라베이스 연주 장면

 

누구나 각자 자기 나름대로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있고, 또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왜 그 사람이 그 일을 하게 되었고, 그가 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지 따위는 물어 볼 필요도 없는 겁니다.(96p)

 

모노드라마이기 때문에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면서 내용이 술술 익힌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다. 오케스트라 속에 존재감 없는 악기를 빗대어서 인간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신이 여자를 만나 결혼이나 할 수 있겠냐는 의문과 안정된 공무원 신분이라 나오기 두려워하는 마음은 요즘과 딱 맞는 현실이라 더 공감이 되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그럼에도 연주하기 위해 일어서서 가는 주인공처럼 이 책은 세상의 콘트라베이스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는 책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