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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히가시노 게이코

 

'나’로 존재하는 것은 육체일까? 영혼일까?

여느 때와 똑같이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어떤 예감도 없었다. 그 특별할 것 없던 아침이 뉴스 속보로 깨져버렸다. 스키장을 향해 가던 버스가 굴러서 많은 사상자가 발송했다는 속보. ‘헤이스케’는 아내와 딸을 떠올리며 온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 순간, ‘헤이스케’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일상이 깨져 버렸고 그리고, 비밀이 생겼다.

버스가 계곡을 구르는 순간 아내 ‘모나미’는 온몸으로 딸을 감싸 안았다. 이 때문에 출혈이 심한 ‘모나미’는 생명이 위독해졌고, 장시간 짓눌러 호흡을 하지 못해 뇌를 다친 딸 ‘나오코’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남편 헤이스케는 딸의 안부를 묻는 아내를 위해 의식 없이 옆에 누워 있던 딸과 아내의 손을 서로 잡게 해 줬다. 그 순간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딸이 깨어났다.

슬픔과 안도로 정신없는 ‘헤이스케’에게 깨어난 딸이 ‘헤이스케’에게 건넨 말로 이들의 비밀이 시작되었다. "여보 나 나오코가 아니라 모나미야" 

 

얼굴과 몸은 귀여운 초등학생 딸이지만 말의 억양과 행동은 아내와 똑같았다. 둘만 아는 이야기를 알 뿐만 아니라 미세한 몸짓까지, 아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 사람을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나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공유하는 영혼을 가진 아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의 유전자로 태어난 육체이니 딸이라고 해야 할까?  그 누구라고 하든, 헤이스케는 딸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 흔들리면서도 버틸 수밖에 없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아내를 잃고 미쳤다고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둘 만의 비밀로 한 채 병원에서 퇴원 후 모나미는 딸 행세를 한다. 딸과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이 나오지만 그래도 무사히 딸의 학교를 다니고 숙제를 하고 시험도 친다. 집에 돌아와서는 집 안 일을 하면서 딸과 아내의 일상으로 살아간다.

 

딸을 잃은 슬픔도 표현하지 못하고 그 딸이 되어서 살아가야 하는 모나미! 그녀는 돌아갈 수 없기에 슬프지만 두번째 인생을 살아야 했다.  가정주부로 살아왔던 게 후회스럽지는 않았어도 딸 대신 사는 인생이니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악착같이 공부에 몰두한다.

 

어른이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만약 다시 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고 말이다. 그때는 공부란 것이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좀 더 나의 선택을 폭넓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아쉬움을 느끼니깐. 

 

헤이스케는 아빠이면서 아빠가 아니고 남편이면서 남편도 아닌 삶을 살아간다, 반면 아내 모나미는 목표가 생기면서 하루가 분주하고 점점 젊어져 가는 몸을  가진다. 점점 둘 사이에는 채워질 수 없는 틈이 벌어진다.

 

이 책에는 딸의 몸에 들어간 모나미의 거대한 비밀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사고 당일 휴일도 없이 근무를 했던 운전기사 '가지카와'의 비밀이다. 부쩍 1년 사이에 무리하게 초과근무를 하며 수당을 챙기려고 했던 가지카와! 그러나 재혼한 아내는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에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지카와는 그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까지 영혼이 바뀌었던 소설이나 책이 많이 나왔다. 자칫 식상해질 수 있는 이 주제를 흥미롭게 끌고 갈 수 있는 점은 결말에 있다. 많은 소설들이 재밌게 풀어가다가 결말을 맺기 위한 결말로 어설프게 끝내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이 책은 관련 없어 보이던 두 가지 비밀이 하나로 만나 끝맺음되는, 인상적인 결말로 마무리되는 점이 좋았다. (소설의 결말은 리뷰 금지)

 

지루하고 무더운 여름 밤을 버티기 좋은 것 중  하나가 추리소설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머릿속을 비우고 책의 빠져들기 좋기 때문이다. 게다가 <히가시노 게이코>라는 이름만으로도 믿고 읽는 작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아직 여름밤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