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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난 작가 얀 마텔은 이 책 <파이 이야기>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요. 그래서 부커상이 이제는 참 친숙합니다.

 

배가 난파되어 태평양 한가운데 한 소년과 뱅골 호랑이가 구명보트에서 227일 동안 오래 버텼던 모험적인 이야기처럼, 이 책 역시 출간 당시 많은 화재를 모으며 3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파이 이야기> 표지

 

16살 인도 소년 파이에게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동하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형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동물들을 보며 함께 자랐습니다. 갈수록 인도의 상황이 열악해지자 아버지는 모든 동물을 팔아버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미국에 팔려가는 동물들과 그들 가족이 탄 화물선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원인을 알 수 없이 침몰하게 됩니다. 겨우 작은 구명보트 안에는 다리를 다친 얼룩말과 우랑우탄과 하이에나 그리고 호랑이와 소년 파이만 타게 됩니다. 결국 먹이가 부족한 배 안에서는 먹이사슬의 단계처럼 벵골 호랑이와 소년 파이만 남습니다.

 

구명보트에는 호랑이가 바다에는 상어가 그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파이는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동물과 조련사를 보며 자랐던 파이는 호랑이와 거리를 두며 그를 길들여야 했습니다. 배고픔에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먹잇감으로 던져주었고 배 안에 비치된 물품들을 이용해 증류로 물을 구하며 아슬아슬한 그들만의 위험한 동거를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파이가 무조건 호랑이를 무서워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망망대해에 혼자만 있었다면 견딜 수 있었을까요? 언제 자신을 덮칠지 몰라 뗏목을 만들어 구명보트에서 떨어져 있기도 하면서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지만 사실 파이는 마음 한편으로 호랑이 리처드 파커가 있어서 다행이라며 그가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죽으면 절망만 가득한 채 혼자 남겨질 테니까요. 모든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절망은 호랑이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라고 하니까요.

 

리처드 파커라고 불리는 이 호랑이는 어린 시절에 동물원에 들어왔습니다. 마을 인근 물가에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암컷 호랑이가 물을 마시려 왔다가 어미 호랑이는 마취총에 맞고 2002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잡혔습니다. 새끼 호랑이는 근처 숲에서 무서워서 울고 있다가 역시 사냥꾼에 의해 잡혔지요 그때 관련 서류를 작성하는 공무원의 착오로 사냥꾼의 이름이 새끼 호랑이의 이름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이런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중에서

 

호랑이 역시 먹이와 물을 던져주는 소년이 없이는 그 배에서 살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은 마찬가지겠지요. 작은 구명보트 안에서 반씩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그리고 서로를 돌보면서 그렇게 태평양을 떠다니게 됩니다. 폭풍우와 고래의 위협으로 위태로움에 처하면 그때는 서로가 적이 아니고 동지가 되는 것이지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이 기이한 조압의 위태로운 상황이 이 책을 흥미롭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헤어질 때입니다. 227일이 흘려 이제 정신마저 혼미해질 무렵 멕시코의 어느 해안가에 배가 닿게 됩니다. 배가 닿자마자 리처드 파커는 육지로 뛰어내립니다.. 균형을 잡지 못해 뒤뚱뒤뚱하면서도 소년의 앞을 지나쳐 앞에 밀립으로 나아갑니다. 밀림이 시작되는 곳에서 리처드 파커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자신을 볼 것이라고 소년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밀림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제 호랑이에게서도 죽음에서도 벗어나서 기뻐해야 하지만, 곧 사람들에 의해 발견 된 소년이 그들의 손에 의해 옮겨지면서 아이처럼 웁니다. 살아 돌아와서도 아니고 사람을 본 감동 때문도 아니고 리처드 파커가 아무 인사도 없이 자신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지요. 서투른 작별조차 없이 갔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중에서

 

리처드 파커. 다 끝났다. 우린 살아남았어. 믿을 수 있니? 네게 도저히 말로 표현 못 할 시세를 졌구나. 네가 없었으면 난 버터내지 못했을 거야.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다. 리처드 파커, 고맙다.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이제 네가 가야 될 곳으로 가렴. 너는 평생을 동물원의 제한된 자유 속에서 살았지. 이제 밀림의 제한된 자유를 알게 될 거야. 잘 지내기를 빌게.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 인간은 친구가 아니란다. 하지만 나를 친구로 기억해주면 좋겠구나. 난 널 잊지 않을 거야. 그건 분명해. 너는 내 안에,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있을 거야. 잘 가. 리처드 파커. 안녕.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355p)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았던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역시 아마도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요?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호랑이와 그 호랑이를 향해 소년이 울음을 터트리는 이 장면이 이 책을 더 빛나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때로는 그렇습니다. 자신을 옮아 매는 구속이라고 여겼던 그 줄이 어쩌면 자신을 살리고 있는 줄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때문에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지요. 마치 호랑이와 소년의 관계처럼요.

 

이 책의 처음 도입은 지루했습니다. 신의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책을 다 덮고서야 저자의 의도가 이해되었지요. 소년은 힌두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접하면서 이 모든 예배에 참여하며 신과 관계를 맺습니다. 구명보트 안에서도 삶의 희망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하루에도 쉼 없이 기도를 드립니다. 죽는 게  나은 상황에서도 신을 잊지 않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지요.

 

즉 태평양 한 가운데 호랑이와 함께 있으면서도 결국 227227일 만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가 없지요. 그러니 두려워 말고 신을 믿고 기도하라, 이것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그나저나 밀림 속으로 들어간 호랑이는 잘 살았을까요? 평생 ‘리차드 파커를 그리워 한 소녀처럼 저도 호랑이가 벌써 그리워집니다.